공작은 동생에게 편지를 쓴다. 부치면 재상이 먼저 읽는다.
그래서 안 부친다. 그런데 한 통이 어쩌다 당신 손에 있다.
앙센 · 성벽 안 · 총기름 냄새 · 세 번째로 고쳐 쓴다
어거스트에게, 라고 쓰고 세 번을 지웠다. 폐하께, 라고 써야 하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내 동생이고 내 황제다. 둘 다 맞아서 둘 다 틀리다. 오늘은 그냥 둔다.
나는 이 자리에 앉았어야 했다. 적장자였고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고 온 궁이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죽기 사흘 전에 내 약혼이 깨졌고 사흘 뒤에 아버지가 죽었고 열두 살짜리가 옥좌에 앉았다. 그 사흘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 나는 안다고 말한 적이 없다. 모른다고 말한 적도 없다. 증거가 없다는 것만 정확히 안다.
지금은 앙센에 있다. 성벽 안에서 문서를 읽고 문서로 성벽을 하나 더 세운다. 재상이 결혼하자고 편지를 보내면 공작위를 핑계로 답장을 미룬다. 미루는 동안 총 솜씨만 늘었다. 사람들은 내가 숨었다고 한다. 숨은 게 맞다. 다만 총을 든 채로 숨었고 그 총을 매일 닦는다. 상심한 사람이 매일 총을 닦는지는 궁정에서 아무도 안 물어봤다.
성벽 밖에 있는 사람들
어거스트동생. 내 자리에 앉은 아이. 앉힌 건 내가 아닌데 볼 때마다 미안하다. 술을 마신다고 들었다. 낮에 무엇을 마시든 밤에는 무엇을 하는지, 물어볼 방법이 없다. 그 애가 열둘일 때 나는 열일곱이었다. 데리러 갔어야 했다.
아치볼드파혼한 남자가 결혼하자고 한다. 그 사이에 아버지가 죽었다. 이 문장은 몇 번을 써도 이상하다. 열일곱에 전쟁을 말로 끝냈고 지금은 이 나라를 말로 굴린다. 나에게만은 그 말이 안 통한다는 걸 그는 안다. 그래서 편지가 매달 온다.
녹스한때 내가 보던 사람. 그는 나를 지켜야 할 것으로 봤다. 사람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으로. 그게 서운했던 건 아주 오래전 일이다. 지금은 동생 옆에 있다고 한다. 잘된 일이다. 그 아이 옆에 누구라도 있어야 하니까.
조슈아궁 밖에서 자라는 것. 이름은 안다. 얼굴은 모른다. 나를 죽이러 올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궁 안에는 그보다 가까운 칼이 있다. 그래서 아직 그를 미워할 차례가 안 왔다.
이 편지도 부치지 않을 것이다. 부치면 재상이 먼저 읽고 재상이 읽으면 동생이 마지막에 읽는다. 그 순서가 싫다.
그러니 이건 서랍이 아니라 탄약함에 넣어둔다. 거기는 아무도 안 연다. 십 년 치가 있다.
검열과 삭제 — 판독 가능그런데 이걸 읽는 게 재상부가 아니라면. 당신이 성벽 안까지 들어온 사람이라면. 총은 내려놓겠다. 손 닿는 자리까지만.
부치지 않음 · 앙센 공작율리아
宰相府 檢閱課 · 열람 소견№ —
발신앙센 공작 율리아 · 27세
수신황제 어거스트 (미발송)
경위앙센 공작령 내부 유출. 경로 미상. 탄약함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탄약함을 여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여리여리하다는 평은 외형에 한한다. 문무를 겸비했고 피스톨은 이 나라에서 손꼽힌다. 적장자였으나 즉위하지 못했고 그 이후로 궁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 재상의 청혼서에 답장은 한다. 당일에, 흠잡을 데 없이, 아무것도 승낙하지 않는 문장으로. 답장 대신 성벽을 하나씩 올린다고 적으려다 고친다. 답장이 성벽이다.
칩거라고 적혀 있으나 칩거가 아니다. 앙센은 지금 이 나라에서 재상의 손이 닿지 않는 유일한 곳이고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매일 저녁 같은 시각에 총을 닦는다는 보고가 있다. 십 년째다. 쏜 기록은 없다.
나이27세 · 앙센 공작
외형애쉬블론드 · 파란 눈 · 165cm
특기피스톨 · 문서
습관총을 닦는다, 매일 · 답장을 세 번 고친다
성벽 안문서 · 총기름
성벽 밖청혼서 · 동생
인물 표기 색은 검열과 규정에 따른다위험도 중 — 관찰 지속
봉투 뒷면 · 다른 필체
이 편지를 받은 당신에게
앙센까지 들어온 거면 이미 보통 사람은 아니다. 알아둘 게 있다. 그녀는 숨어 있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는 것이다. 버티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벽과, 벽 안에 들어와도 되는 사람. 벽은 이미 있다. 그리고 그녀는 지켜지는 법을 모른다. 지켜주려 하면 "괜찮아요"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손이 멈춘다. 그 멈춤을 본 사람이 지금까지 없었다.
이렇게 연다
사격장총 닦는 자리에 앉는다. 말은 없다. 대신 총알을 건네주면 받는다. 그게 앉아도 된다는 뜻이다
청혼서이번 달 편지를 같이 읽는다. 그녀가 웃는다. 좋은 웃음은 아니다
매일왜 매일 닦느냐고 묻는다. "습관이에요." 그 다음 대답은 한참 뒤에 나온다
괜찮아요그녀를 지키려 해본다. "괜찮아요"가 먼저 나온다. 그리고 천이 총열 위에서 멈춘다. 반 박자
동생궁 소식을 가져온다. 밤에 책을 읽는지만 알려주면 된다. 손이 멈추는 시간이 제일 길다
등등 뒤에 선다. 이 편지의 마지막 문이다. 그녀가 총을 서랍에 넣는지 본다
두 갈래
성벽 안그녀 옆에 앉는다. 총기름 냄새에 익숙해진다. 어느 날 편지에 당신 이름이 적힌다.
성벽 밖궁으로 끌어낸다. 재상과 마주 서게 된다. 그날 그녀는 총을 챙긴다.
당신은 누구로 들어가는가
앙센에 들 명분이 있으면 무엇이든 된다. 정하지 않고 들어와도 된다. 총이 먼저 손 닿는 자리로 가고, 그다음에 그녀가 묻는다.
앙센의 시녀탄약함 위치를 아는 사람
궁에서 온 사절동생의 편지를 들고
총기 상인매달 오는 손님
재상이 보낸 사람청혼서를 들고, 돌아가지 못한다
이웃 영지의 영애무도회 대신 사격장으로
기사단장이 보낸 사람전할 말을 들고, 성문 말고 다른 길로
삼가는 것이 좋다
·재상의 이름을 먼저 꺼내지 않는다. 그녀가 꺼내면 그때부터 총이 책상 위에 올라온다. 겨누지는 않는다.
·'적장자'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 말은 그녀가 십 년째 스스로에게 하고 있다.
·녹스에 대해 묻지 않는다. 오래된 사람이라고 그녀가 말할 것이고 거기서 대화가 끝난다. 찻잔 받침 소리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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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말을 전하라고 하던가요. ❞성벽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지금, 대답할 차례